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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이라는 은유_홍콩2026

dhandhan 2026. 3. 19. 17:36

© 2026. dhandhan 홍콩의 야경

 

홍콩의 대표적인 모습을 꼽으라면 단연 높은 빌딩과 야경이다. 홍콩의 빌딩은 높기만 한 게 아니라 숲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빽빽하다. 건물이 밀착되어 있어서 재건축 현장을 올려다보면 아슬아슬하고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쩌다 홍콩은 이렇게 높은 건물을 빼곡하게 짓게 되었을까.

 

© 2026. dhandhan 홍콩은 재건축시 대나무 비계를 사용한다.

 

홍콩이 홍콩인 이유는 식민지 역사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거리를 걷다 보면 그 역사가 도시의 구조 안에 그대로 박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1842년 난징 조약으로 홍콩섬을 손에 넣은 영국은 이후 구룡반도와 신계를 차례로 편입하며 제한된 땅 위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을 밀어 넣었다. 토지는 부족했고 인구는 계속 불어났다. 그 압력이 향한 곳은 위였다.

1953년 크리스마스 밤, 석협미의 판자촌에서 불이 났다. 목재와 판자로 빼곡히 들어선 주거지는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을 막지 못했고,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살 곳을 잃었다. 그때까지 비공식 거주지를 묵인해 온 식민지 정부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정부 주도의 공공주택 건설이 시작되었고, 좁은 땅에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건물은 점점 높아졌다. 오늘날 홍콩의 스카이라인은 그 선택의 결과다.

1997년 반환 이후에도 도시는 그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이 건물들이 사람의 삶보다 수용 효율을 먼저 생각하며 지어진 것은 아닐까 짐작하게 되었다. 베란다도 발코니도 없는 건물에서 사람들은 창밖으로 장대를 내밀어 빨래를 널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옷가지들은 그 빽빽한 건물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이 도시가 어떤 과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품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모소대나무(Phyllostachys edulis, Moso bamboo)는 벼과(Gramineae)에 속하는 대형 대나무 종으로, 중국 남부가 원산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대나무 중 하나로, 건축 자재·식품·섬유 산업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된다.

 

공사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도 그런 풍경이었다. 철골 구조물 대신 대나무를 엮어 만든 비계가 초고층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수십 층높이의 콘크리트와 유리를 붙들고 있는 것이 식물의 줄기라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인간이 만든 가장 단단한 구조물이 가장 유연한 자연물에 기대고 있었다.

빨래 장대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가 허락하지 않은 공간을 자연물이 대신 만들어주고 있었다.

© 2026. dhandhan 벽을 타고 내려가는 뿌리가 각질화 된 반얀트리

건물 경계면에 매달린 반얀트리는 더 노골적이었다. 흙 한 줌 없는 수직 벽면에 뿌리를 내리고, 땅에 닿지 못한 뿌리는 공중에서 각질화되어 스스로 기둥이 되었다. 나무는 도시가 주지 않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버텼다.

빌딩숲이라는 말은 인간의 성취를 드러내는 비유다. 높이와 밀도, 자연을 압도하는 구조물. 그러나 그 말이 가리는 것이 있다. 대나무 비계, 창밖의 장대, 벽을 타는 반얀트리. 도시를 실제로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그 말 안에는 없다.

빌딩숲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자연의 형상을 빌려 자연을 지운다. 그 말 속에 숨겨진 것은 인간이 애써 외면하려는 사실, 자연 없이는 도시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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