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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_1001.2012

dhandhan 2012. 10. 1. 13:20

명절_0930.2012

 

추석 전으로 지인들에게 인사메시지를 보냈다. 알고 지내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도 긴밀한 관계를 항시 유지하기는 힘들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인사라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당일 또는 그 다음날 정도에 다들 답문자를 보내줬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드러났다. 관계의 깊이에 따라 문자의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성별의 차이에 따라 추석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의 경우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관계일 경우 나와 동일한 수준의 형식적인 답문자를 보내왔다. 좀 관계가 편안한 사이가 될수록 추석보다는 일에 대한내용을 안부 삼아 보내고 아니면 명절 음식 장만 잘 하라는 류의 내용을 보내온다. 대체로 명절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반면 여성들의 경우는 연령의 차이, 관계의 깊이에 따른 차이와 무관하게 거의 절대 다수에게서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층은 가족관계 내에서 받아야 하는 결혼, 취업, 학업 등의 문제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로, 결혼한 친구들은 과한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 등등.

며칠 잘 버티다 와야지”, “이번에 일 핑계 대고 안내려 갔어”, “명절 없었으면 좋겠어등등.

과연 명절은 누구를 위해 존재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이 서른을 한참 넘어서 맑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노동자가 자기 노동에 대해서 소외된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 난 노동자로서가 아닌 여자로서 내 노동에서 내가 소외 당하는 꼴을 상기시키곤 했다. 그리고 많은 운동권 또는 좌파라 불리는 남성들의 계급투쟁 구호 속에 여성 노동을 끊임없이 착취하는 행태를 목격할 때면 솔직히 계급투쟁이 근본적으로 누굴 위한 투쟁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가정사의 여러 복잡함으로 인해 14살부터 명절음식 만들기에 나섰다. 20년 넘는 긴 시간 한 집안의 가계유지를 위해 내 두 손이 많은 일을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추석과 설날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나의 의사를 쉽게 반영해 본 일이 없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와 나 단 둘이서 명절 음식준비를 했고, 이 집안의 남자들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밥상에 둘러 앉아 내가 차린 음식을 받아 드시기만 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짐했다. 당신들이 허울 좋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둘러 앉아 한끼의 식사를 미안한 마음 없이 당연하게 받은 대가를 지불하게 할 것이라고.

물론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맑스 따위 알기 전부터 나는 이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직접 행동을 꾸준히 실행해왔다. 음식의 양도 줄이고, 바리바리 음식 챙겨주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남동생이 아직은 미혼이지만 결혼을 한다면 그때야 말로 명절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만반의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남동생의 와이프가 그의 삶에 동반자이길 원하지 우리 집안에서 자기노동의 소외자로 남게 하고 싶지는 않다.

 

명절은 내가 이 땅에서 한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가장 철저히 짓밟히는 날이다. 오직 여자로서, 즉 한 남자 또는 다수의 남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날이다. 작은 아버지들은 묻는다. 아직도. “너 언제 결혼 할거니?” 아버지는 말한다. “네 엄마처럼 음식 잘 만들어서 시집가 남편한테 사랑 받아야지라고.

속으로 나는 외친다. “내가 이 나이에 아직도 결혼 타령을 들어야 합니까? 이 정도 나이 먹었으면 이젠 나의 선택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제 입에 들어가는 한 끼 식사도 못 만들어 먹는 사람은 사람으로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가 해주는 밥만 쳐다보는 남자는 관심 없습니다라고.

 

차례만 지내고 집을 나섰다. 이런 날에도 영업하는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파고들어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펼쳐 들었다. 가슴 한가운데 폭발할 듯한 억울함을 삭삭 갉아내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이성복 시인의 시집 중에서 꽤 따뜻한 시집을 만났으니 말이다.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3편 정도의 글을 쓰고 나니 창 밖의 새파란 하늘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러 강남역으로 향했다. 일을 핑계대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친구다. 저녁식사와 차를 마시고 짧은 시간 긴 대화를 나눴다. 우린 사랑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사랑타령의 가요를 들었다. 밝은 달을 보며, 나라는 사람은 나를 사람 아니게 하는 것들과 관계 맺기 어려운 사람이구나 라고 정의 내렸다.


by 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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