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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게 우는 아이, 서럽게 우는 여자_0519.2016 본문

Essays/소소한 이야기

서럽게 우는 아이, 서럽게 우는 여자_0519.2016

dhandhan 2016. 5. 19. 14:24

 

© 2016. dhandhan 우는 여자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나름 구상의 시간을 갖지만 작정하고 구상하는 순간에는 적절한 생각도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조급한 마음에 여유를 갖고 크게 생각하기 어렵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갖게 된 태도는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밀어부치기 보다는 무조건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터득한 방법은 산책이다. 산책을 하며 늘 봤던 거리라도 다시 보고, 사람들도 더 자세히 관찰한다. 동일한 장소여도 항상 동일한 사람 동일한 사건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날마다 참 미묘한 변화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어떤 날, 어떤 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나에게 어떤 생각을 촉발시킬 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날은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어슴푸레한 저녁 산책길에 올랐다. 익숙한 건물, 다 아는 상점, 별다를 것이 없는 공간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고 또 보며 걷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아이의 울음소리다. 엉엉 서럽게 운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으니 아파트에 딸린, 아파트 밖으로 공개된 놀이터였다. 가로등 아래에 아이를 끌어안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우는 아이다. 엄마의 바리자락을 부여잡고서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렇지만 우는 아이의 서러움을 이해한다는 듯 등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무엇이 서러웠을까. 얼마나 서럽길래 듣는 이도 마음이 동해 한동안 먼발치에 서서 가는 길을 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일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다. 그 이유가 대수롭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물론 어른에게 아이의 서러움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아이의 성장에 필연적으로 쫓아오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내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바라봤던 것은 그 서러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울음으로, 울음만이 유일한 언어인 듯 뱉어내는 몸짓 때문이다. 언어, , 주술 같은 것. 내가 이러이러 하다고 표현하는 것. 내가 무엇을 바란다고 표현하는 것.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바람이 무너졌음을,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해야 하는데 그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을 내가 갖지 못한 것인지,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없다. 그래서 서럽게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이 없었으리라.


말을 배우고, 글로 적고, 사람들과 그 배운 말로 대화하고 소통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말의 한계를 느낀다. 더는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면 먹먹해지는 서러움이 가시 돋듯 아프게 한다. 언어에는 그 시대의 가치들, 통념들이 내재된 채로 유통되고 생멸하기 때문에 가치로부터 벗어난 것들 배제된 것들은 언제나 언어가 없다. 그래서 언어를 갖지 못한 것들은 서럽게 우는 것 말고는 제 바람을 표현할 길이 없다.


서럽게 우는 아이만큼 많이 목격되는 사람은 서럽게 우는 여자다. 서럽게 우는 아이는 엄마에게 위로 받지만 서럽게 우는 여자는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다. 세상에 서럽게 우는 여자의 숨은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것을 받아 적을 말도 글도 없다. 그들의 서러움은 언제나 울지 않는 남성의 언어로 미화(어머니에 대한 표상으로)되거나 비난(여자는 이성적이지 못하다)한. 수많은 남성 문학,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표상으로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자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울었다. 그랬더니 청승맞다고 비난했다. 내가 아니라고 말할 때조차 너네 여자들은 이런 거야 라고 답을 내려주시는 친절한 오빠들 때문에 우는 일을 그만 두었다. 나의 말을, 나의 언어를, 나의 주술을 갖겠다고 꿈꾸고, 희망하며 숨을 쉰다. 미약하지만, 나는 나의 말을, 나의 언어를 나의 주술을 조금씩 갖고 있다.


미처 몰랐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서럽게 우는 아이가 서럽게 우는 여자를 드러내는 단초가 되리라고는. 모든 울음은 말로 할 수 없거나 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울음은 가장 원초적인 말, 언어, 주술일 수밖에 없다. 말로 눈물을 규정하지 말고 눈물로 말을 새롭게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