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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소소한 이야기

원하지 않은 선행_0409.2017

dhandhan 2017. 4. 9. 12:45

정기검진 차 병원을 찾았다가 또 다른 병을 하나 더 얻었다.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으며 병이 생긴 원인을 찾기 위해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 몇 가지 검사만으로 병원비는 몇 십 만원을 훌쩍 넘어버렸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다. 원인을 찾지 못한 의사는 다음 방책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제시한 방책은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주저했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다음 방책은 나의 노동시간을 단축시켜야만 가능한 방책이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곧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이중의 어려움이 생기지만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아마도 병을 치료하는 것을 선택하고 병원이 요구하는 금액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의사가 어떤 마음으로 진료를 보는지 모른다. 그런 것은 내가 알려고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어봐도 솔직히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든다. 의사는 아픈 사람이 있어야 돈을 번다. 그리고 어렵고 희귀한 병을 고치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는 것도 환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많은 환자를 경험하는 것이 곧 의사의 노하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실력은 전적으로 수많은 환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노하우가 집단으로 축적된 곳이 병원이겠지.

 

많은 노하우가 집약된 곳, 병원은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서 환자들을 관리한다. 흉부외과, 호흡기알레르기내과, 혈액내과, 치과, 피부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대장항문외과, 응급의학과, 신경과, 류마티스내과….  정말 많아서 열거도 힘들다. 이렇게 세심하게 나눠져 있어 인간의 몸에 관한 한 모르는 곳이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의사들을 만나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 것은 왜일까. 우선 전문지식으로 가득한 의사들은 그 전문성을 비전문인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 하나 생길 때마다 스스로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한 후에 의사를 대면하고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 논한다. 전문지식이 일반화로 비약되어서는 안 되지만 일상의 개념이나 메커니즘을 빌어 설명할 수 없다면 의사 스스로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충분한지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총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몸은 하나의 부위가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몸을 부위별로 나눈 것은 특화된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이지 총체성에서 분리시키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병은 어떤 증상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기에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원인 찾자고 분과를 전전하다 보면 몸의 총체성은 사라지고 분해된 덩어리가 제각각 부유하는 기분이다.

 

분과마다 내 몸뚱이를 실험재료로 내어주고도 모자라 내게는 너무나 거액인 연구비(진료비)까지 내고 병원을 나서면, 내게 남는 것은 병의 원인을 찾았다는 기쁨이나 병이 치료가능 범위의 것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실은 인류라는 종을 위한 하나의 데이터를 제공한 실험도구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