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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_0706.2016 본문
무더운 여름, 두터운 엄마의 손에 끌려 길 한복판에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나의 긴 머리를 풀어헤쳐 중력에 떠맡기니 얼굴 아래로 쏟아진다. 영문도 모른 채 한 자세를 유지하니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피와 목덜미에 차가운 액체가 스며들어온다. 불쾌한 화학약품 냄새와 함께. 뭣 모르고 당했으니 저항도 못했다. 불쾌했지만 불쾌함을 드러내는 것은 나의 권리가 아닌 듯 엄마의 손길은 무지막지 했다. 목덜미를 엄마의 손에 붙잡힌 채 고개 숙인 자세를 몇 분간 유지하니 이내 고개 들지 말라고 하시며 나를 또 끌고 집안으로 들어가신다. 이번엔 확실히 차가운 물줄기가 뒤통수를 내리친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세차게 내 머리 위로 쏟아 부으니 시원하다. 엄마는 직접 나의 머리를 감겨주셨다. 억센 손가락이 힘있게 두피를 마사지 했다. 겨우 11살인 내게 두피 마사지는 시원하기 보다는 아픔이었다.
“아, 아, 아프다고!”
“가만히 좀 있어. 이놈의 머리 숱은 왜이리 많은 거야.” 하시며 벅벅 문질러댔다.
머리를 다 감기고도 성에 안 찬다는 듯 쳐다보신다. 두 손으로 내 머리 속을 뒤지시며 없어져야 하는데, 아이고 하시며 한숨을 토하신다. 그때는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달고 다녔다. 참빗으로 빗겨도 줄지 않는 이. 자신의 다리를 베개 삼아 나를 누이시고 연신 참빗으로 빗기고 또 빗겼다.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양 엄지손톱을 맞대어 이를 누르면 톡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를 톡 하는 소리로만 기억한다. 유난히 숱이 많았다. 갓난 아기적 사진에도 숱이 많았다. 그런 머리 속에 이가 자리를 잡았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겨울을 맞이할 때 이와 안녕을 고했다. 여전히 투박한 손에 이끌려 뭣 모르고 끌려가 싹둑 잘렸다. 안 자르겠다고 저항하지 않았다. 긴 머리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도 않았고, 머리카락의 길이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만큼 자라 있지도 않았으니까. 가벼웠다. 아침마다 머리를 묶는 일로 엄마를 붙들 일도 없었다. 사진 한 장 남기질 않아서 어떤 머리였는지 기억하질 못한다. 거울을 자주 봤다면 기억했을지도 모르지만 거울을 보며 자기를 인식할 만큼 자의식이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의 마지막 해에 찍었던 사진을 보니 제법 머리가 자라있다. 못난이 인형 같았다.
중, 고등학생 시절에도 머리를 기르지 못했다. 학교 교칙이 머리를 못 기르게 했다. 짧은 머리를 이십 대에도 삼십 대에도 유지했다. 삼십 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머리를 길렀다. 일이 바빠서 그냥 길렀더니 긴 머리가 되었다.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머리카락이 신기했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모습도 신기했다. 갑자기 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가는 듯 했다. 신기함에 일년을 버텼고, 어떻게 기른 머린데 하며 또 일년을 버텼다. 그럴수록 나는 나이 들었고 삶의 무게를 자발적으로 덜어낼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다. 그런데 머리가 무겁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서 조금 잘랐다. 일년 후에 또 조금 잘랐다. 이젠 더 기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드니 몸이 전 같지 않게 가벼움을 요구한다. 어떤 날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결국 다시 이를 잡던 해의 여름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머리카락의 길이로 자신의 정체성 따위 드러내지 않았던 때로. 긴 머리가 절실하지 않았던 그 가벼움의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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