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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계

dhandhan 2014. 9. 20. 01:04

평택으로 일을 하러 다닌지 3개월째다.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왕복 5시간을 소비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다녀오면 책 한 권을 거뜬히 읽는다.

 

인터뷰가 있었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20대 초반의 청년 예술가 A를 만났다.

그를 만난 것은 여러 차례였지만 그가 한국어를 잘 못하고 우리(나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작업을 한다)가 영어를 잘 못하는 탓에

심도있는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지역 아트캠프 팀장님의 도움으로 드디어 고급스러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친구 둘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참고로 둘은 나보다 14살 아래이며 각자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 생활하면서 40대는 보통 직급이 높은 상사이기 때문에 대하기 어려워야 하는데, 나를 비롯한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직장에서의 상사가 만만하다는 얘기였다. 어떤 면에서는 칭찬일 수 있고 어떤 면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있어서 나의 태도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난 내가 선배들의 꼰대 짓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으로 후배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그 둘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거다. 그렇지만 내가 선배들의 모든 태도를 비난하거나 그들의 가치를 무조건 폄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배들이 후배를 대하는 태도가 일방향성을 띌 때 경계하려는 것뿐이다. 그런데 두 친구들에겐 그 맥락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난 지금 내 또래의 세대보다는 훨씬 더 민주적이고, 더 다양성이 존중 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부러워한다. 물론 그런 세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내 윗세대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졌음을 잘 안다. 그래서 선배들의 고통의 시간을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유산을 물려 받은 세대는 분명 그 업적을 이룬 세대와는 다르다. 그러니 선배들처럼 살 수 없다. 선배들의 노고는 치하하나, 그렇다고 그들이 감수성 예민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그런 기틀에서 자연스럽게 살고있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은 선배들이 배워야 할 정도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의 인터뷰가 또 한 번 나를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A는 아버지 직업의 특성으로 미군부대 주변으로 옮겨다니는 생활을 했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주로 미국에서의 생활이 많은 부분을 차지 했지만, 미국 안에서도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게다가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그의 작품엔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을 다룬 이미지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과는 '다른 것'들을 대하면서 부딪치는 불편함에 대해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많은 '다름'을 안고 있는 나라다.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라 전제일 뿐이다.

그러면 한국 친구들을 대할 때, 통일성을 강조하거나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워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또한 답은 간단했다. 친구들 모두 예술가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 자체가 질문자의 한계를 드러내는 질문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40대 한국사람으로서 갖는 한계 안에서 질문을 했고, 20대의 미국 청년은 쿨하게 답변 했다.

그리고 그를 보며 아무리 내가 갈고 닦으려 해도 안 되는 어떤 감수성을 발견했다.

나는 배우고 반성하며 얻어지는 어떤 것들이 그에겐 당연한 전제였다.

앞선 세대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영통에 있던 알 수 없는 성의 흔적>

 

인터뷰를 마치고, 팀장님의 배려로 영통까지 차를 얻어탔다. 영통 역에 내려 처음 발을 디뎌보는 그곳의 풍경을 감상했지만

이젠 어딜가나 서울 같은 모습이라 ...

영통에서 집까지 가는 지하철 노선은 둘이다. 1호선을 이용하거나 분당선을 이용하는 방법.

고민을 했다. 분당선을 이용하고 싶었으나,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며 거울 속의 나를 봤다.

그리고 오늘은 아니라고 내가 내게 말했다.

결국 지하철을 포기하고 사당행 직행버스를 탔다.

30분을 넘어서면 멀미를 하는지라 사당에 가까워질 수록 속이 거북헤 괴로웠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 10시.

하루를 잘 마감했고, 잘 견뎠다고 자신을 토닥거리며 맥주 한 캔을 샀다.

집까지 또 20분을 걸어가야하기에 아사히 맥주로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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