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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과 보지 못한다는 것

dhandhan 2014. 9. 25. 16:54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한 예술단체에서는 촉각도서라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도서를 일본에서 만든 사례를 보고, 그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고 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점자로 설명하면서 장면을 그림책 만들 듯 촉각적으로 자극이 되는 도구들을 활용하여 만들어나갔다. 나는 그 책들을 보면서, 촉각도서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시각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 요소에 좀 더 세부적인 묘사를 촉각이라는 감각으로 완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각은 항상 기준점이 되고 나머지 감각들을 부수적으로 활용하는 책이라는 인상이 깊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이미 본 것이 있기 때문에, 시각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면서 다른 감각을 활용하여 사물이나 공간을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경우라면? 처음부터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시각이라는 기능이 세상을 인식하는 기준점 자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시각적 기준에서 만들어진 촉각도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단체에는 시각장애인 한 분이 촉각도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보지 못한 채 만져서 인식하는 어떤 지점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계셨을 것이라 이해한다. 그 사람과 잠시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의구심은 또 하나의 걱정스러움이 되었다.

그는 내가 미술을 한다는 말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은 음영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음영은 빛을 인식하는 시감각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볼 수 없는 그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이 사회가 얼마나 집요하게 보는 것을 강조하는, 시각 편향적인 세계인가를 반문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가.

 

그는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자신의 한계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이지만 보는 사람들처럼 그림을 그림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볼 수 있는 사람들처럼 그리는 것보다 보지 않고, 일상적으로 대하는 사물이 다른 감각들(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 의해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나는 후각이 예민하지 못하다. 환절기엔 항상 목과 코감기로 고생을 한다. 후각이 예민하지 못하니 시각에 의존하는 비율이 후각이 발달한 사람보다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보는 것은 상당히 예리한 편이다. 사람과 관계할 때 나는 상대의 주장이나 공적인 행동(적당히 가릴 것은 가려진 행동)보다 더 세밀하게 한 사람을 파고들듯이 관찰한다. 이런 태도는 의도적이기 보다는 나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이루어져왔다. 내가 사람들을 예리하게 관찰한다는 사실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제삼자를 이야기할 때, 살짝 그 사람이 빙의 된 듯 말투, 제스처 등 특징적인 것들을 모사하며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면 듣고 있던 이들은 똑같다며 놀라워하거나 즐거워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내 이야기를 듣던 이들도 어느 순간 타인의 특징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 모사에 공감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들은 나보다 덜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나의 특성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바로 단점이기도 하다. 즉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 할 때가 많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상대가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자신의 상태를 감추려 하면 알아내기 힘들다. 반면 특정 기분에 따라 몸에서 발산하는 어떤 에너지, 즉 냄새 같은 경우는 내가 잘 파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상대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 난 불리해진다. 그래서 더 나는 사소한 행위들을 집요하게 관찰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후각이라는 감각의 장애를 극복하려 하기 보다는 다른 감각들을 더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의 감각을 발달 시키는 것처럼, 그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시각장애를 한계이며 극복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시각이라는 감각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며,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면 분명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비시각장애인이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그만의 독보적인 영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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