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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 참가기

dhandhan 2014. 10. 13. 00:42

 벼룩시장 참가기

 

여기저기 열리는 벼룩시장에 구경 가거나 물건을 사는 입장에는 서봤지만 판매하기 위해 참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는 입지 않는, 그러나 버리기엔 너무나 멀쩡했던 옷들을 한가득 여행용 가방에 싣고 참가했다.

기대하지 않았다. 가지고 간 옷들 중 반만 팔아도 다행이겠지 생각했다.

집에 돌아갈 때 너무 많은 옷을 다시 들고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따뜻하고 맑았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더위도 식혀주고.

그래서 한강을 찾은 사람들도 많았다.

뚝섬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참가했다. 참가하는 사람도 많고 찾는 이도 정말 많았다.

이렇게 활성화 되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저마다 사연이 있었을 물건들을 들고 자리를 폈다.

의류가 많았지만, 식기나 보기 드문 장신구를 들고 온 이들도 많이 있었다.

내 옆자리는 모녀지간이 나와 의류를 팔고 있었는데, 저 많은 옷가지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싶을만큼 많았다.

나는 대략 30벌 정도 챙겨 가면서도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옆자리를 보고 안도할 정도였다.

제각각 달랐다. 사연이 다른 물품이듯 가지 수도 제각각이었다.

 

 

점심 때가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내가 가지고 나간 의류에 관심도 많이 가졌다.

불과 한 시간 정도 지나 가져간 옷의 절반 정도를 팔았다.

그리고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다가 폐장시간이 다가오면서 다시 사람이 몰려

가져간 옷의 거의 대부분을 다 팔았다.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날 팔 물건의 거의 대부분을 다 팔았을 때의 뿌듯함.

뭔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제각각의 사람들.

 

어떤 모녀는 내가 부른 값에 콧방귀를 뀌었다. 이따위 것에 그 값이 가당키냐 하냐는 듯.

사실 이날 내가 판 옷값 중 가장 비싸게 받은 것은 사천원이었다.

모녀는 옷 두 벌을 고르고는 사천원을 주고 떠났다.

물건이란 그런 것이다. 한 번을 입던 두 번을 입던 중고가 되면 그렇게 헐값이 된다는 것을.

떠나가는 내 옷과 함께 그 옷과 관련된 역사가 떠나버리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한 여자는 마음에 드는지 드레스 한 벌을 계속 만지작 거리며 망설였다.

걸쳐보라고 권하자, 들고 있던 짐들을 모두 바닥에 내려 놓고 옷을 걸쳤다.

안타깝게도 작았다. 내가 다 미안했다. 꼭 맞으면 좋으련만.

살포시 드레스를 자리에 내려놓고 나에게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는 떠났다.

 

한 아저씨가 조용히 다가와 쭈그리고 앉더니 남동생에게서 받아온 줄무늬 셔츠를 집어든다.

남자 옷은 몇벌 안되기에 '남자, 사이즈 100, 이천원'이라는 내용을 적은 택을 붙여두었었다. 

뒷주머니에서 이천원을 바로 꺼내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택을 붙여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여러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는 편의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사실 나도 물건 값을 흥정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꽤나 미인이었을 중년의 세련된 여자가 다가와 호피무늬 드레스를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고 한다.

호피무늬 드레스는 친구로부터 받아온 옷이었다.

그 때 알았다. 옷이 임자가 있다는 것을.

이 옷이 과연 팔릴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옷이 어울리는 사람이 내 앞에 서있었다.

망설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내게, 넌지시 말한다.

내가 가격때문에 그러는게 아니예요. 괜히 샀다가 안입을까봐서.

이왕 가져가는 옷 잘 입어주면 좋겠어서 조용히 기다렸다.

이천원에 호피무늬 드레스를 교환하고 떠났다.

 

어떤 이는 타인이 입던 옷이라고, 중고라고 막 대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이 값에 이만한 옷을 구했다면 신나서 돌아가기도 한다.

나는 하루 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제각각인지를 목격했다.

또 이 많은 옷들을 누가 사갈까 걱정했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자신의 물건을 찾아갔다.

내가 하루 판매하며 번 돈은 사만원 남짓이었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물건, 새물건이 넘치는 세상이라지만 그 넘치는 물건이 우리의 속내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유행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 내 몸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내게 잘 맞고 내게 어울리고 내게 익숙한 옷이 유행이라는 이름때문에 사라질 위기일 때

중고시장만큼 유용한 교환의 장소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루만에 다 팔겠다는 욕심이 아니었다면 더한 값을 받고서라도 옷을 팔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년째 입지 않는 옷에 스며나오는 죽음같은 묵은 때를 보느니 좋은 주인 만나 옷도 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벼룩시장에서의 마음가짐은 욕심이 아니라 선물하는 마음이 훨씬 현명한 자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건을 파는 동안 식사를 못해, 일을 파한 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탓에 저녁식사를 걸렀더니 밤에 출출하더이다.

11시가 넘어 동네 떡볶이 가게를 찾아 오뎅을 4개나 호로록~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아이스크림 후식!

내가 번 돈의 10%를 나를 위해 토닥토닥~^^

사만원 벌고 이러게 뿌듯할 수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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