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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잡상 본문
내년이 한불수교 129주년이다.
무용계 지인이 말한다.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문화교류 행사를 하려 한다고.
가을엔 한국에서도 여러 축제들이 많은 편이라 프랑스 예술계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내년 행사를 위한 공연팀을 섭외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 수준이하라 섭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을 여러번 찾은 사람들은 한국의 예술계 상황이 어떠한지를 알기에 이해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무용팀을 프랑스에서 올리기엔 무리가 많다고 한다.
우선 한국적 색채가 없단다.
우린 한국적 색채라 하면 항상 조선시대 유물같은 춤만 생각한다.
색채라함은 한국적인, 한국인이라는 독특성으로 해석해낸 무언가여야 한다는 뜻이다.
무조건 전통춤을 고수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그리고 무용수들이 대다수 생각없이 춤을 추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오래전부터 들어온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춤은 안무가만 생각하지 무용수는 동작에 대한 해석 같은 것 안 한다는 것이다.
안무가도 무용한 사람만 한다.
유럽에서는 무용을 하지 않은 사람도 안무가가 될 수 있다. 안무에 대한 상을 안무가가 정하면
동작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무용수들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용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다. 분명한 개념작업이다.
게다가 무용수들이 자기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해 했다. 무용단원으로 춤 출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춤을 춘다.
기회가 없으면 춤을 출 수 없다. 그들이 작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지원책이 미약하다보니 무용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래도 자기 작업을 하며 안무가로 성장하는 케이스는 있다. 그런 경우 집안이 부유하다.
난 아직까지 예외적인 상황을 보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한달 평균 무용공연 관람 횟수가 4회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관람자의 수준 또한 높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이 무용공연을 보는 횟수는 일년에 4번도 안 될 것이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최악일 것이다. 농촌에서는 현대무용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여전히 마당극이나 전통공연이 대세다.
국가지원의 프로그램은 항상 실험적인 것을 요구한다. 실험적이지 않으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자기 고민과 해석이 아니라 그냥 실험적인 것.
그레서 무용수는 자기 검열에 들어간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써냈던 그 실험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제단한다.
궁금하다. 실험적인 것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 절하가 심하다.
말로는 예술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몸소 보여주시는 행동들은 도구로 활용하려고만 한다.
어쩌면 예술이 사람들의 감수성을 조장하는 강력한 뭔가이기에 일부러 지원 안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친구가 말한다.
아무리 거대한 상상을 해도 현실 앞에서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작업은 소일거리같은 작업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단다.
하고 싶어도 여력이 안되는 것이다. 경제적 여력이.
몇몇 스케일 큰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물적지원을 받는 경우다. 단순히 재료비나 작업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물적 여력이 가능하기 때문에 스케일 큰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술계도 자기 돈들여 작업해도 전시한다고 불러 놓고 전시비도 안챙겨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현재 200만원을 받고 프로젝트에 4개월째 참가 중이다.
매일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력 대비 받은 인건비는 정말 교통비 수준이다.
예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 같다.
권력 지향적이거나 반권력 지향적.
자본가나 국가권력에 순응하거나 찬양하는 작업을 하면 그나마 먹고 살만하다.
그게 안 되면 권력비판적인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는 소히 좌파 세력에 의해 소비된다.
돈은 안 되지만 명예는 얻는다.
결국 두 정치세력의 도구로서만 자리잡을 수 있다.
국가권력이 어떤 성향을 갖느냐에 따라서 5년마다 지원되는 정첵이 달라진다.
결국 다양성은 존재하지 않고 정책에 따라 작가들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결국 예술가 지원 정책에서 밀려나는 작가들이 많아진다.
나도 이런 지원정책에서 반은 밀려나고 반은 떠나왔다.
나는 아직 각자도생의 길에 있지만,
예술가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위해 조합을 결성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의 유행같다는 생각도 든다.
조합이 얼마나 민주적일지 의구심이 들기에 관망하는 정도다.
모든 인간집단이 커지면 부조리해진다.
내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예술가라는 정체성은 갖고 싶지만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갖고 싶지는 않다.
작업은 하고 싶지만 작업으로 꼭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은 그러하지만 삶은 꼭 그렇게 되질 않아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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