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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애착형성기_유진 본문
소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기준에 의하면 고양이는 생후 8개월 이내에 사람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인간 친화적 성향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태어나서부터 6개월가량이 ‘각인기’라는 얘기다. 이건 어림잡은 평균이니까 이 시기가 고양이와 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고양이의 사고에 유연성이 담보된 기간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예외도 있고, 고양이의 성향도 중요하고, 개체가 겪는 경험의 종류도 각인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애착을 형성하는 기제가 다양하고 그에 따른 고양이의 성향도 미세하게 차이를 만들며 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에 어떤 이는 동물에 대해 뭐 그리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가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종종 인간 아이의 애착 형성에 관한 연구를 보면서 그 대상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꽤나 섬세하게 관찰되고 예단을 피하면서도 인간 아이의 행동에 대한 해석은 유독 관대하다고 느꼈다. 반대로 동물 아이의 애착형성에 대한 실험은 꽤나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이미 많은 과학적 실험이 ‘동물은 기계적 반응체’라는 객관성을 빙자한 차별적 편견을 기준 삼아 자행되었기에 그 해석에서도 역시나 차별적인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의 기록은 적어도 나와 함께 사는 나의 반려 고양이의 애착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인간 아이의 실험만큼의 과학적 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관대함을 갖고 고양이들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다.
유진이는 생후 일개월 정도에 구조된 탓에 젖병에 분유를 채워 시간마다 배를 채워줘야 했고, 배변을 보지 못해 부드러운 티슈로 항문을 자극시켜 배변을 도와줘야 했다. 어미의 젖꼭지가 필요할 땐 사람 손바닥의 두툼한 살을 쪽쪽 빨아가며 애정을 채웠다. 어미가 핥아주면 좋았겠지만 돌보는 이가 사람이라 늘 맨 손으로 쓰다듬어주었고 그래서 어미가 돌봐줘서 얻을 수 있는 유익균과 세정작용 보다 사람의 손을 타고 흘러간 세균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대신 인간만이 해줄 수 있는 손놀림의 감각을 좋아하는데, 어깨나 목덜미 주무르기, 다리 근육 풀어주기 같은 안마기술과 양손으로 뒷발질 스파링 대주기 같은 특화된 기술로 보통의 고양이가 어미와 생활하면서는 얻을 수 없는 이점을 누리기도 했다.

애착 형성기에 어미가 없어서 늘 애정을 갈구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젖 먹기와 젖떼기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과 안정된 분리, 독립과정으로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늘 동생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모든 놀이를 함께 했기에 주 보호자인 동생과 분리되는 것에 두려움이 많았다. 그 말은 어미 고양이가 적당한 시점에 자식을 분리시키는 과정을 우리는 전혀 몰랐기에 유진이는 분리되고 독립하는 과정을 전혀 겪을 수 없었고 이는 이후 삶에도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과 살며, 사람이 하는 말에만 귀 기울인 유진이는 고양이가 보내는 신호보다 사람이 보내는 신호에 잘 반응하고 잘 이해했다. ‘유진’이라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즉각 반응했고, 밥 먹자 하면 밥을 물 먹자 하면 물을 먹었다. 고양이 특유의 내재된 특성으로 모래에 변을 가리는 일은 잘했으며 변을 보고 나면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유진이는 변을 치워라, 밥을 달라, 물을 먹고 싶다는 주요한 욕구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소리 신호를 보낼 줄 알았고 사람도 대체로 유진이가 보내는 신호를 잘 이해했다.
반면 고양이가 보내는 소리 신호에는 무반응이다. 다른 고양이를 마주칠 일은 병원이나 가야 가능했기에 예방접종이나 소소한 사고로 병원을 찾으면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은 보여도 다른 고양이들의 소리나 냄새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신경을 안 썼다기보다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만 있을 뿐 알아봐야 한다는 호기심을 일으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동장 안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유진이가 반응하고 기대하는 것은 오직 사람보호자의 소리와 손길뿐이었다. 가끔은 고양이로 태어나 고양이다운 면모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유진이가 애처롭게 느껴졌지만 나랑 평생 살 거니까 괜찮다고 토닥여주었다. 물론 유진에 대한 위로는 나에 대한 면죄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왠지 동물은 인간 때문에 여러 가지로 피해만 입는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작은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어느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진이는 길생활하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태어나 잠깐의 생의 위기를 맞이하긴 했지만 빠른 구조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자신이 누리는 것에서 무엇이 결핍되고 무엇이 풍족한지 가늠하는 것도 경험과 비교 대상이 있을 때 가능한데 유진에게는 경험도 비교대상도 부재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조건을 절대적으로으로 받아들였고 그 조건에 잘 적응했다. 유진의 주 보호자인 동생은 유진과 보내는 일 년의 시간동안 팔과 다리, 어깨, 가슴 등 가리지 않고 유진이가 만들어낸 손발톱 상처를 달고 살았다. 인간이 가늠하기에 유진이가 부족하다고 느낄만한 것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해도 채워줄 수 없는 것(엄마의 사랑)을 빠르게 포기하고 인간이 더 많이 채워줄 수 있는 것(놀이와 다양한 먹이)에 집중적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노력한 것이다. 그 덕에 유진이는 부유한 집안의 자식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특유의 온아한 성품과 비호전적인 성향을 갖고 자랐다. 물론 이렇게 유진의 성향을 단호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이후 동백이와 흰눈이가 비교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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