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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Species/놈놈놈

놈놈놈-애착형성기_흰눈

dhandhan 2025. 3. 11. 16:57



흰눈의 성장기 역사는 나의 글 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말은 나에게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가 아니라 길고양이로서 경험한 정보가 우선 한다는 말이다.
흰눈은 지극히 고양이답게 그러나 여느 야생동물과는 다르게 도시라는 공간에 적응한 길고양이답게 성장했다. 엄마로부터 포유동물다운 애정과 관심을 받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데는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사람이 먹이를 제공해도 사람과 특별한 애정 관계를 가지려는 노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 2016. dhandhan 흰눈과 자매인 점순이 유년시절



동물의 인지 능력을 가늠하는 실험에서 특히 영장류 대상의 연구는 동물이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능력이 있느냐를 평가했다. 이런 실험은 대개 비슷한 얼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결과를 두고 동물의 역량을 평가절하했다. 그러다 사람도 동물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해 새로운 가설이 세워졌다. 같은 종끼리는 미세한 차이도 구분하지만 종이 달라지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새로울 것 없는 당연한 가정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동물이 억울한 평가를 받았는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다 동물은 자기들끼리는 작은 차이로 서로를 구분한다. 혈연관계에서는 서로 닮는 것도 이해하고 친족관계를 구분할 줄도 안다. 우리 인간처럼.

흰눈이는 길에서 생활하며 인간에 대한 애착보다는 자신에게 위협인지 이익인지를 구분할 정도의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대상이다. 익히 아는 정보로 고양이는 낮은 톤의 목소리를 가진 인간 수컷에 대해 경계심이 높다. 인간처럼 고양이도 개별적 차이보다는 그 종의 특정 무리를 집단화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들의 친족관계는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친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걸 기억해 내는 방법이 꼭 인간처럼 얼굴을 기억하는지 아니면 가족 내 특유의 냄새나 다른 정보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특정 도시의 한 구역에서 콜로니를 형성한 고양이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적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면서. 원래 세상 이치가 가장 비슷한 것 끼리만 차이를 두고 다툰다. 이해관계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들도 영역을 두고, 번식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경쟁한다.

고양이 세계에서 고양이들만의 룰을 따르면 살아온 흰눈이가 구내염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도태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의 나이 여덟 살이었다. 어느 날 길에서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늙은 축에 속한 고양이다. 그런 흰눈을 집으로 들이는 것은 당장의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사는 일이 고통이 될 수도 있는 선택지였다. 그러함에도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고 사는 일이 고단해도 그를 떠나보내는 일보다 나을 것 같았다.

집으로 들여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흰눈에게 해야 하는 일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 하나 폭력적이지 않은 게 없다.  우선 케이지에 가둬야 하고 인간이 일방적으로 주는 먹이를 선택지 없이 먹어야 하고 케이지 안에서 잠자리와 변소를 공유해야 하는 불쾌한 일까지 뭐 하나 미안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사람들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폭력이라는 자각 없이 구조 행위 하나만 선한 행위로 강조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그런 모든 과정을 당해야 하는 흰눈의 분노는 늘 나만 보면 터져 나오는 하악질과 앞발로 바닥을 내리치는 강력한 항의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분노에 찬 흰눈이 처음으로 느긋하게 잠을 청한 날은 케이지를 거실로 옮겨 동백과 유진을 만난 날부터다. 낯선 고양이의 출현에 긴장한 두 고양이와는 다르게 흰눈은 하악질도 없이 그저 케이지 안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두 눈으로 쫓을 뿐이었다. 흰눈이 케이지 안에서 상대해야 하는 대상이 인간뿐이었을 때와는 다르게 다른 고양이의 존재는 그에게 일종의 안심할 수 있는 작은 근거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그 눈빛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동백의 마음을 이용했다. 케이지 앞에 앉아있으면 동백이 내 곁에서 흰눈을 탐색했고, 그런 동백을 사근 하게 부르고 얼굴을 만져주고 털을 빗겨주었다. 그리고 흰눈은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그렇게 동백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인간과 흰눈 사이의 허공에 안심다리가 되어주었다. 내가 애쓰는 모든 행동은 동백이라는 필터를 경유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동백이 나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고양이들만의 몸짓 언어였던 것이다.

© 2024. dhandhan 동백 따라 따뜻한 바닥에 누운 흰눈



흰눈은 두 번의 겨울을 따뜻한 집에서 나면서 난로의 따뜻한 맛을 알았고 침대에서 자는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9살이라는 나이를 지나가고 있다. 고양이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흰눈은 나와 같은 중장년에서 노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나도 이 나이에 누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 경기할 듯 싫은데 흰눈이 그걸 참아주고 있다. 코 끝에 살짝 손가락을 들이대 냄새 맡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마를 살짝 만져보고 그러다가 정수리를 만져보고 그렇게 더 나아가 빗질까지 하기까지 우리 사이는 애착형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반의 믿음 정도는 획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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