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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애착형성기_동백 본문
동백이를 입양할 당시 나이가 생후 2개월을 넘어 3개월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동백이도 사람과 친화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기 안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이 험난 했듯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길 생활에서 얻은 상처와 그 상처조차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정도로 보호받지 못한 몰골이었다는 것은 안락사 공지에 올라있는 그의 사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대개의 보호소가 유기되거나 다쳐서 구조되어 오는 동물을 받는 곳이다 보니 다시 보호자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가 순서다. 서울 강서지역의 한 활동가가 그런 동백이를 발견했고 자신이 판단하기에 조금만 치료해 주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아 입양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그렇게 동백이는 구사일생 활동가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유명한 고양이 까페에 올라온 입양홍보 글의 내용이 대충 위와 같았다. 노란색 어린 고양이 사진을 보며 안타까웠고 유진이 보다 어리니까 유진이가 받아들이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입양 절차를 밟았다.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동백이는 근 일 년 동안 우리와의 소통을 고함으로 시작해 고함으로 끝냈다. 유진이와는 다르게 사납고 거칠었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탓에 곰팡이균이 남아있었고, 머리에는 예전 상처가 아물며 남긴 땡방 자국이 선명했다. 피부병 치료 때문에 한 달 정도 격리 겸 유진과 합사를 위한 준비 기간을 가졌는데 유진이를 대면 한 이후로는 줄기차게 유진이를 쫓아다녔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유진이는 고양이를 모르고, 고양이 행동 방식을 모르고, 고양이 언어도 모른다. 그래서 동백이 유진에게 하는 모든 행동을 적대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동백이를 거부하는 신호를 무안할 정도로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동백이는 자신보다 어른 고양이인 유진이 품에 안기려 했고 같이 잠을 자려고 했고 자신이 받고 싶은 그루밍을 해달라는 의미인지 유진이를 핥기까지 했다. 사람이 보기에 동백이가 보내는 모든 신호는 자신에게 관심 가져달라는 의사표현이었지만 유진이는 고양이가 할 수 있는 모든 신호를 이해하지 못했고 무척 불편하게 여겼다. 유진이의 거절과 거부의 신호가 반복되자 동백이의 감정 상태는 외면당하는 것에 속상함을 넘어 분노로 넘어서는 것 같았다. 반년 정도 지나자 동백의 유진에 대한 태도는 적극성에서 공격성으로 바뀌었다. 유진이가 지나가면 발을 걸고 도망치면 쫓아가 엉덩이를 잡아채고 유진이가 머무는 고마다 쫓아가 자리를 빼앗았다. 집요하게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동백이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유진이는 급기야 잦은 설사와 혈변을 보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유진의 상태가 안 좋아질 수록 우리는 동백의 활동에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를 향해 달려가면 길을 막아섰고, 발을 걸면 강한 어조로 동백! 하고 외치다 보니 동백이도 점점 우리와의 생활에서 위축되는 경향을 보였다. 추운 겨울잠잘 때 뭐라도 덮어주면 화들짝 놀라며 도망쳤고, 누구의 곁에도 오지 않고 혼자 외로이 의자에서 쪽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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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편을 들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혈변을 보는 유진이를 돌보는 것도 자기만 소외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백이를 달래는 것도 모두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동백의 마을을 열고 싶었다. 분명 유진이 정도의 나이에 험한 꼴을 당했을테고 보호소에 가서도 돌봄 보다는 갇혀서 불안함에 떨었을 것이다. 활동가가 입양하고서야 아마 처음으로 보호라는 것을 받지 않았을까. 임시보호를 받던 곳에서는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했을 테니 분명 그중에는 동백이를 챙겨주는 고양이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또 난데없이 낯선 곳으로 이동해 왔고 거기서 만난 유일한 고양이(유진이)에게 정을 붙이려 하는데 외면만 당했으니 마음이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니 늘 사람만 보면 악을 쓰고.
제일 가슴 아픈 사건은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보인 동백의 행동이다. 벨소리가 울리면 동백은 혼비백산해서 미친듯이 안방으로 달려가 침대 밑에 숨고, 어떤 날은 동생 방의 붙박이장 안에 들어가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숨어있는 모습을 봤을 때다. 그때 깨달았다. 동백이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는 것을. 초인종 소리가 울릴 때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곁에 있던 다른 고양이가 사라진다거나, 아니면, 어쩌면 죽는 것을 봤거나. 동백이 무엇을 겪었든 간에 그건 어린 고양이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었을 것이고, 두고두고 두려움으로 남을만한 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동백은 우리 집에서 생활한 지 6년째에 처음으로 벨소리를 듣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관계 개선을 위한 시작은 동생은 작은 행동에서부터였다. 동백이 소리를 치면 다가가 정수리를 쓰다듬고 사람이 만지는 것에 거부의사를 보이지 않으면 살짝 안고서 “아이, 우리 동백이 예뻐.” 라는 말을 사근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턱밑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매일 우리는 모두 동생의 행동을 본받아 동백이 악을 쓰면 다가가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예쁜 말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악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가 너의 얘기를 들어주겠다고, 동백이를 많이 예뻐한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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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포유동물이 그렇듯 어릴 때 필요한 것은 모유만이 아니다. 사랑과 관심, 그것 없이는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다. 인간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이야기는 어린 날의 성장 배경이다. 싫든 좋든 인간은 어릴 때 유복하게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을 좋아하고 결핍된 사람을 멀리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도 포유동물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긴 하다. 그래도 한 때의 결핍이 평생의 한인 것처럼 사는 사람은 확실히 별로다. 충분히 다른 방식의 사랑과 관심이 있는데 오직 피로 맺은 관계의 사랑만 집요하게 찾고 원망하는 것도 인간만의 특성인 듯하다.
우리 동백이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라 그런지 인간의 애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동백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더는 악을 쓰지 않았고, 유진이처럼 조곤 하게 자기 할 말을 했고, 가끔은 다정한 눈빛으로 우리를 올려다보며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잠을 잘 때 사람 품으로 파고들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 유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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