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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흰눈의 적응기_온기의 쾌락 본문
길에서 생활한 지 7년이 넘어서는 길들여지지 않은 고양이를 집으로 들일 때는 구조의 기쁨보다 고양이가 적응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법이다. 그러함에도 구조하려는 순간에는 위급함이 걱정을 더 앞서기 때문에 구조를 결심하게 된다. 흰눈은 구조되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했다. 구내염이 심해서 치료를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획틀에 갇힌 상태로 이미 최소 하루 이상을 보냈기에 진료보다는 안정이 필요한 게 맞지만, 다시 흰눈을 이동장에 넣어 병원을 데려가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의 고통을 잠시 더 연장하는 선택을 했다. 병원까지 이동하고 진료를 기다리고 수술받고 마취에서 깨고 집으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은 불안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 도착해서도 기다리는 것이 안정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욕구 해결을 2층짜리 작은 케이지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나로서도 이 선택지가 마음에 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무작정 인간을 피하고자 날뛸 모습이 선해서 어쩔 수 없이 가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유진과 동백이 흰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어 한동안 흰눈은 발코니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그러다 겨울이 다가오며 더는 발코니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거실 한 켠으로 흰눈의 케이지를 옮겼고 그때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코니에서 공간에 대한 이해도, 상황에 대한 이해도, 사람에 대한 이해도 없이 지내다 거실로 옮겨지자 자신이 어떤 공간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누구와 엮이게 되는지 차츰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물론 내가 흰눈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기에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은 지극히 인간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흰눈이 보여주는 태도가 그런 인간적 표현을 쓰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2층짜리 케이지에서 좀 더 편안하게 잠을 잤고, 사람이나 유진, 동백이 오가는 것을 느긋하게 관찰하기도 했고, 케이지 문을 열어주면 조심스럽게 나와서 집안을 살펴보다가도 겁나면 오히려 케이지 안으로 피신했다. 불편하게 여기던 케이지를 자신의 안전망으로 삼았다. 나와 가족과 두 고양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추적하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생기자 자기 스스로 조금씩 이 상황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킬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오히려 흰눈의 적응력을 높여주는 힘으로 작용했다.
우선 흰눈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상황은 유진과 동백이라는 고양이의 존재다. 즉 사람만 있는 곳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종의 고양이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놀라움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흰눈의 케이지 앞에 앉아있으면 동백이 나를 뒷배 삼아 흰눈을 보러 케이지 앞으로 다가갔고, 그때 나는 동백을 쓰다듬거나 안아주면 흰눈의 눈이 커다래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흰눈의 사람에 대한 검증은 동백이나 유진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흰눈은 나와 가족이 유진과 동백에게 하는 말투, 행동을 늘 유심히 듣고 관찰했다.
반복되는 일상은 불안을 잠재우고 여유를 갖게 한다. 케이지가 더는 감옥이 아닌 자신의 은신처로 여겨지고 사람과 고양이가 경계 없이 지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확인하자 흰눈에게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차츰 케이지를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케이지 바깥으로 나와 이동 범위를 넓혔다. 케이지 위나 케이지 근처 가구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거실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에서 종일 사람과 다른 고양이를 관찰하기도 하는 등 조금씩 여러 행동들을 시도하는데 아마도 자신의 행동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해 보는 듯했다. 물론 우리 가족은 누구도 흰눈이 하는 행동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그런 상황의 반복이 흰눈에게 점점 집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쌓게 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겨울이 깊어졌을 때 일어났다. 바깥보다 집안이 훨씬 따뜻하지만 집안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 안에서도 추위를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활동성이 적은 글쓰기나 책읽기 같은 활동은 몸에 열을 내는 활동이 아니다 보니 난로를 켜고 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고양이들이 난로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이게 된다. 나는 조용히 글을 쓰고 고양이들은 따뜻한 침묵 속에서 꿈나라로 빠져든다. 그 모습을 본 흰눈도 난로를 켜면 퍼지는 특유의 따뜻한 온기 냄새에 이끌려 난로 쪽으로 끌려오는데 항상 나 때문에 난로 주변을 맴돌다가 케이지로 돌아갔다. 체온을 나눈 적은 있지만 온기 이상의 따뜻함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흰눈에게 난로의 유혹은 떨쳐내기 쉬운 유혹이 아니었던 듯싶다. 늘 두려움과 따뜻함이라는 유혹 사이의 저울질에서 두려움이 승기를 거머쥐는 것에 안타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해 보였다. 책상 앞에 앉기 전 미리 난로를 먼저 켜두고 뜸을 들였다. 흰눈이 두려움보다 쾌락을 먼저 욕망하기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둥근 난로를 중심에 두고 세 명의 고양이가 각자 방사형으로 자리를 잡고 나면 뒤늦게 내가 난로 주변에 합류하는데, 이때 이미 난로의 따뜻한 맛을 본 흰눈은 내가 다가가자 움찔하며 도망칠 듯하다가 내가 고양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책상 앞에 앉으면 자신도 다시 자리를 잡고 난로 곁에 누웠다. 난로 덕분에 비로소 케이지 없이 흰눈과 나 사이는 대략 5~60 센티미터 거리로 좁혀졌다.

벌써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도 난로 곁에 누워서 나를 피하지 않는 흰눈을 보면 그 마음이 몹시 궁금해진다. 유진과 동백은 모두 겨울의 혹한을 경험하기 전에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난로 생활이 오히려 당연했다. 반면 흰눈은 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엄마나 자매나 자식과 똘똘 뭉쳐 체온과 애정을 나눴고 혼자일 때는 자기 체온을 최대한 잃지 않을 곳을 찾느라 분주했는데, 이젠 제 몸을 돌돌 말지 않고도 따뜻하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한듯하다. 이번 겨울엔 난로를 켜고 더는 뜸 들일 필요도 없었다. 난로 냄새가 나면 내가 곁에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난로 주위에 자리를 잡으니 우리 많이 친해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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