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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Species/놈놈놈

놈놈놈-사랑빗

dhandhan 2025. 7. 5. 18:05

흰눈이 집생활자로 변모한지 2년째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 루틴이 보인다는 것이 그 증명일 것이다. 

© 2025. dhandhan 거실에서 흰눈의 자리

 

밤엔 주로 거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잠을 깊이 자는 것 같진 않다. 새벽 5시가 되면 부모님이 기상하는 것에 맞춰 식사를 한다. 식사를 충분히 배부를 정도로 많이 먹는다. 그리고 안방으로 향한다. 부모님이 일어나면 생기는 침대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잠을 청한다. 출근 준비로 부산한 한두 시간을 견디고 나면 집은 무척 고요해진다. 그때 흰눈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진다. 9시나 10시 사이에 일어나 까치발로 살살 다가가면 흰눈이 배를 드러내고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흰눈이 오기 전에는 오전에 청소하던 습관이 있었는데, 흰눈이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청소를 미뤘다. 사람의 루틴 정도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고양이가 아니다, 흰눈은. 집에서 생활한다고 하더라도 꽤나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다른 고양이들과 다른 모습이다. 유진과 동백이 늘 사람에게 관심받길 바라고 사람 곁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것에 비하면 흰눈은 자신이 편하게 여기는 장소를 골라 대개의 시간을 보낸다. 가끔 그녀가 사람에게 다가올 때가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람 곁에 있는 다른 고양이 때문이다. 

 

그래도 흰눈의 길생활 눈칫밥은 무시할 수 없다. 혼자 독립적인 듯 생활하지만 다른 고양이들을 관찰하며 사람과 사는 법을 배운다. 내가 동백이 얼굴을 쓰다듬고, 유진이를 안아주고, 털을 빗겨주고, 눈곱을 떼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모습을 무심한 듯, 놀란 듯 2년 동안 관찰하면서 안전한 행동이 무엇인지 충분히 판단한 듯하다. 

 

그 중 하나가 털 빗질이다. 빗을 들고 다가가면 놀라 팔짝 뛰고, 하악 소리 내며 경계한다. 그러면 바로 옆에 있는 동백이를 빗질해 준다. 자신의 혓바닥이 잘 닿지 않는 곳을 빗질 ‘당하는’ 동백이가 나름 괜찮아 보였던 것일까. 손가락 냄새를 먼저 맡게 하고 안심시킨 후 빗을 몸 쪽으로 가져가면 힐끗 눈치는 보면서도 저항 없이 배를 바닥에 밀착하고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 “어디 한 번 해봐. 내가 견뎌볼게.” 하는 몸짓으로 빗질을 당해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등줄기를 따라 빗을 쓸어내리면 그녀의 온몸 근육이 난생 처음 당해보는 자극에 꿈틀거린다. 머리, 어깨, 등, 엉덩이 순으로 차례차례 꿈틀거리는 근육을 보면 낯선 느낌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여러 차례 빗질을 하는 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을 보면 또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느낌인 것 같다. 빗이 엉덩이 부분에 이르면 살짝 컬이 엉키는지 빗이 매끄럽게 나아가지 못하고 툭 걸린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 살짝이라도 털이 뽑히거나 하면 낯선 자극이 좋음에서 나쁨으로 변할 수 있고 이런 경험은 생각보다 잘 지워지지 않는다. 

© 2025. dhandhan 빗질 당해주는 동백

 

고양이 집사라면 빗 한두 개 정도는 실패하지 않았을까. 나도 3번째  빗을 교체하고서야 고양이에게 인정받는 빗질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내 손길보다 좋은 도구가 더 유용했던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실패한 빗들은 유독 동백에게서 강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장모는 아니지만 엉덩이 털이 조금 긴 편이라 잘 엉키는 특성 때문에 빗질할 때마다 털이 뽑혔던 것 같다. 아프니까 빗 들고 다가오는 모습만 봐도 질색했다. 

 

빗 이름이 사랑빗이다. 집사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인지 고양이에게 사랑받는 빗질을 하게 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빗질이 수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