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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조건에서 시작되는 삶 본문
얼마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두 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할 만큼 오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2/3 정도는 아프거나 심히 의욕이 떨어지는 컨디션으로 살아왔다. 지금의 내가 뭐라도 이루어 놓고 삶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그 시간들이 상쾌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면 대단한 쾌거다. 한달 중에 내가 의욕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은 1/3이 채 안 된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그런 한계조건에서 뭔가를 시작하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아플 때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 고통이 끝나기를 그 유일한 방법이 삶을 정리하는 일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할 만큼 말이다. 그래도 그 고통의 시간은 서서히 구름 걷히듯, 구름 속에 한 줄기 빛이 더욱 희망차 보이는 것처럼 내 삶에 뜨거운 의욕을 당기면서 사라진다. 그럴 때면 모든 손에 잡히는 대로 시작한다. 이 고통만 없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또 다시 그 고통은 때가 되면 채무관계라도 되는 듯 밀어닥칠 것을 알기에 더 의욕에 넘친다. 지금 아니면 더는 나중은 없다는 것을 언제나 내 몸이 내게 말을 해준다고 해야 할까.
한때는 그런 자신에 대한 우월의식이 팽배할 때가 있었다.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나 정체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한 발 내딛기를 수천 번 망설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난 부족한 나를 더욱 몰아세우며 어떤 범주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라는 그 착각으로. 뭐든 해보면 알게 된다. 자신이 지나치게 환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나 이루려는 목표가 그저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생긴 열등감일수록 이루기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런 비교를 통해서 앞으로 돌진하는 것은 한 순간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쉽게 무너져 버린다. 그것은 견고한 탑이 아니니까. 진정 자신을 위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론 자신의 욕망을 아는 것 조차 어려울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더더욱 자신의 행복을 찾는 일은 어렵고 고단하고 귀찮기까지 하다. 그저 시스템이 부여한 욕망을 욕망하는 것,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 인가. 그런 것들로만 자신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고통스러움은 차라리 눈감아 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적어도 나에겐.
되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 일깨워진 감각, 각성한 나의 욕망은 쉽게 예전으로 돌아가 아무일 없었던 듯이 살게 하지 않는다. 이젠 남은 길은 외롭지만 더 자유롭고, 점점 더 세상의 많은 두려운 일(노후 걱정, 집 걱정, 병원비 걱정 등등)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뿐이다.
누군가는 정상성의 삶으로부터 자진 탈퇴하는 나를 보며 패배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정상성의 범주를 향해 질주하는 당신들 기준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행복은 꼭 사회적 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회라는 시스템 밖에서 얻어지는 행복도 있다. 알코올 중독의 경우 좋지 않다는 의견은 사회적인 의견이다. 개인에게는 몸이 망가지지만 반복함으로써 얻어지는 행복일 수 있다. 극단적인 예일 수 있지만 그만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몹시 주관적인 것이고, 그 질도 무한히 많을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나를 그다지 행복하게 하지 않기에 때론 쓸모 없어 보이는 경쟁이 불편해진다. 이젠 경쟁해야 할 대상이 외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내 안의 무엇인가와 싸워야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한 때는 그것이 약하고 아픈 몸이었다면 이젠 쓸데 없는 우월의식이나 자존심, 최고가 되려는 욕심 그런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들과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한계조건 안에서 시작할 때 가능성의 길은 나를 향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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