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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원, 만원”, “현금가, 카드불가, 교환환불 불가” 본문
“오천원, 만원”, “현금가, 카드불가, 교환환불 불가”
길게 늘어선 지하상가, 그 길이만큼이나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중국산 의류가 다수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지하상가는 값싼 의류로 넘쳐났다. 그래서 찾는 쇼핑객들도 많다. 평일에는 물론이요 주말이면 솔직히 구경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나 역시 종종 그곳에서 저가의 옷을 구매하긴 하지만 구매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저가의 중국산 물건들은 살 때 부담 없는만큼 수명이 짧아서 한철 입으면 재활용으로 내놓기도 민망할만큼 망가진다. 부담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원의 지나친 낭비라는 생각이든다.
저가의 의류판매 때문에 매장마다 흔히 보게되는 풍경이 하나있다. 상품에 대한 안내메시지 택. 상품의 정보라기 보다는 상품 구매에 대해 고객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안내 아니 경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하겠다. “오천원, 만원”, “현금가, 카드불가, 교환환불 불가” 값이 싼만큼 소비자의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오천원, 만원은 돈도 아닌가 보다. 게다가 교환, 환불이 불가하다니. 옷이나 제대로 입어볼 수 있으면 다행이다. 대게는 그냥 눈대중으로 사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환도 환불도 안된다면 그냥 운이다. 사서 맞으면 땡잡은 것이고 안맞으면 싼맛에 샀으니 맞는 사람 주거나 버려야 한다. 애당초 사람 입으라고 만든 옷인데 그 옷에 정작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애초에 만든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또 사는 사람까지도 오직 돈만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엄마와 쇼핑을 나갔다. 딱히 구매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부터 셔츠 하나를 구매할 계획이 있었던 엄마를 위해 셔츠를 사드렸다. 물론 살 때부터 현금지불과 환불이 안된다는 내용의 택을 확인하긴 했었다. 옷이 사이즈 별로 있긴 하지만 사람 몸이라는 게 제각각이거늘 기성품에 몸이 딱 맞을리 없다. 입어보고 사고 싶었지만 입어볼 수 없다는 주인의 말과 매장 안 어디에도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공간이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교환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다행스럽게도(왜 이 상황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는지…) 가능하다고 해서 입어보지 않은채 옷을 구매했다. 셔츠를 받아들고 엄마와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집에가서 확인하고 안맞을 경우 다시 교환하러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화장실에서 입어보고 확인하려는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고. 엄마는 조금 끼는 듯한 옷을 바꾸러 가기가 불편했는지 “그냥 입을까”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나는 바꾸기로 결정하고 엄마를 이끌고 매장을 다시 방문 했다. 주인에게 옷이 안맞으니 교환하겠다고 말했다. 주인은 교환은 가능하다고 했으니 군말 없이 그러라고 했다. 문제는 입어보지 않고서는 잘 어울리는 옷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한마디 던졌다. “셔츠도 안맞는데 옷을 어떻게 안입어보고 사죠? 입어보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안맞을 때마다 매번 바꾸러 올 수도 없잖아요.” 라고. 그러자 주인은 내게 짜증을 내며 “옷을 입어보면 옷이 다 망가지잖아요! 이 셔츠 좀 봐. 벌써 다 엉망으로 만들어 왔잖아!” 그러더니 금고에서 옷값을 꺼내 내게 신경질적으로 환불해주었다. 돈 받고 꺼지라는 것이다. 난 불쾌함에 주인을 똑바로 쳐다봤다. 주인은 내가 가져온 셔츠를 손질하며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엄마는 나를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환불 받았으니 굳이 싸울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를 끌고 나가지 않았으면 분명 일은 겉잡을 수 없을만큼 커지긴 했을 것이다.
그 주인 한 사람에게 따져 묻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 그런거지 하면서 눈감아버리고 싶지도 않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이 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가 없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타인을 등쳐먹는 방법이어서는 안된다. 입어보지도 못하고 교환, 환불 안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자신은 좋은 물건을 만들겠다는 자부심도 없고,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노력도 없으며, 다양한 인간 신체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입을 옷을 만들고 팔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내게 맞는 옷을 살 권리까지 빼앗아 간다. 거기엔 어떤 변명도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아래 수많은 자본가들은 공장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한, 오직 돈만을 위해 싸구려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 당시 공예가들의 미적으로나 실용성, 견고성에 비하면 한없이뒤지는 이 싸구려 물건들은 장식을 과하게 함으로써 그 허접함을 감추었다. 좋은 공예품들은 공정자체의 수고로움으로인해 당시 서민들의 형편으로는 감히 공예품을 살 수 없었다. 그러니 서민들에게 저가의 공산품은 분명 유용하긴 했을 것이다. 쉽게 쓰이고, 견고성이 떨어져 쉽게 버려졌다. 이 때 당시 많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깊이 인식하여 많은 공예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윌리엄 모리스, 티파니일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분야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조잡한 산업 제품에 반대하는 공예 운동을 벌였다.
물론 여전히 공예품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만큼 저렴하지 않다. 금전적 가치로 그 공예품의 가치가 측정이 될만큼 값은 때론 어마어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분명 사람이 배제되버린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고, 한때나마 그 노력의 일환인 공예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부당함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져야할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벌써 몇세기가 지났지만 지금과 19세기가 도대체 다른 점이 무엇이며 인간 삶이란게 발전하긴 한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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