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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다! 본문
나는 왕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평상시 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난다. 남들은 쉬는 날이겠지만 제이에게는 강도 높게 노동을 해야 하는 날이다. 그는 예술가지만 예술로 제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는 못하다. 어느 사회나 예술가가 제대로 대접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훌륭한 작업을 한다’는 사람들의 낭만적 편견 때문에 더욱 밥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 지겹도록 들어온 이 말을 제이는 잘근잘근 씹으며 마음 속으로만 항변한다. 가난한 예술가는 가난에 대한 예술 밖에 할 말이 없는 것이라고.
드디어 가을이 오려는지 밤낮의 기온 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잔 탓에 부은 목의 통증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서늘한 아침바람에 몸서리를 몇 번 치며, 그 몸서리에 졸음을 몰아내며 주섬주섬 외출을 준비한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번의 젓가락질로 깨작거리고 있으려니 벌써 나가야 할 시간이다. 하기 싫은 것들은 항상 너무 빨리 다가오고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다.
제이는 건강한 측에는 들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민한 성격 탓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고 작업한답시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기에 더욱 건강상태는 좋지 않다. 그래서 불편할 때가 많기는 하지만 노동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작업을 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노동을 하게 되지만 싫지 않은 이유는 그 노동의 강도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항상 자신의 몸의 한계를 생각하며 일머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이란 그렇게 자기 신체의 한계를 파악하며 자기 리듬에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줄 알고 서두르다 보니 5분 정도 일찍 매장 근처에 도착했다. 제이는 일찍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서 근처 돌계단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휴대전화의 시간을 일분 이분 확인했다. 드디어 시간은 9시 정각을 표시했고, 제이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매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벌써 빵공장은 그날을 위한 빵을 종류별로 찍어내고 있었고 제이는 그 쉴 틈 없는 쳇바퀴에 몸을 끼워 넣었다. 이젠 적어도 5시간 정도는 그 틀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고 쉼 없이 돌아가야 한다.
제이는 시급을 받으며 일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시급보다는 조금 많지만 일의 강도에 비하면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돈을 주는 사람은 법정 금액보다 많으니 많이 지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입장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기에 제이는 그다지 따지고 들지 않는다. 이런 일은 자신이 아니어도 언제라도 누구라도 대체될 수 있는 노동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그래서 지나친 감정의 소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꽤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빵이 나올 때마다 빵공장 사람들은 제이에게 외친다. “00빵 나왔어요!” 빵을 매장에 진열하라는 뜻이다. 빵 한가지를 진열하고 나면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제이는 자신을 재촉하는 것 같아 불쾌해진다. 그러나 내색하진 않는다. 빵을 진열하는 중에 빵을 사러 오는 손님을 대상으로 판매까지 겸해야 하니 진열하는 일은 빨리 끝나지지가 않는다. 대충의 진열과 정리와 판매를 하다보면 오후 2시가 넘는다. 그제서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잠시 빵공장 사람에게 매장을 맡기고 부랴부랴 도망치듯 쳇바퀴 밖으로 튀어나올 수가 있다.
제이는 단순노동이라 불리는 유사 일들을 싫어한다. 저임금이어서 또는 정말 단순노동이어서는 아니다. 세상은 단순노동자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착취 당하는 것에 분개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본질은 노동의 무가치함을 확인하게 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세상에 단순한 노동은 없다. 모든 노동은 창의성과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 그렇지만 그 노동의 과정을 뚝뚝 잘라버리면 노동하는 사람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전락해버린다. 부속품처럼 전락한 채로 일을 하니 자신의 노동 리듬을 찾을 수가 없다. 노동에 창의성이나 숙련된 기술 없이 무한 반복만이 남는다. 그런 일들을 노동이라고 묶어서 말하는 것에 제이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또 얼마나 몸을 소모시키는가.
제이는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밥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튼튼하지 못한 몸을 위해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다. 10분 정도면 식사는 끝난다. 뜨끈한 핫팩을 허리에 붙이고 드러누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듯 허공을 향해 팔을 뻗어 해초처럼 흐느적거린다. 짧은 휴식, 짧은 달콤함, 짧은 공상의 시간을 갖고나서 다시 일터로 향한다.
노동이 그립다. 상상하고 그리고 만들고 부수고 고치고 노닥거리고 졸고 그런 노동이 그립다.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매장에 들어온다. 그리고 제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빵을 찾는다. 그러나 손님이 원하는 빵은 그날의 상품이 아니다. 제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오늘은 그 빵이 나오지 않음을 안내했다. 그러자 그 중년의 아주머니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왜 안 나와?! 그것 사려고 왔는데! 그럼, 빵 못 사지!”
제이는 순간 당황했다. 속으로 말한다.
“이 여자 뭐지?! 안 사면 되잖아… 내가 사달라고 애원했어. 왜이러는거야!”
중년의 아주머니는 쌩 돌아서며 나가버렸다.
이젠 어떠한 노동도 감정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설령 본마음이 몹시 불편하더라도 철저히 감추고 항상 스마일로 사람을 대하라고 세상은 떠들어댄다. 제이는 돈 준다고 아무에게나 작품을 팔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상해서가 아니라 파는 사람도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으니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팔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서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전의 그 중년의 아주머니는 일행 한 명과 다시 매장에 들어선다. 제이에게로 다가와 음료수 두 잔을 주문한다. 제이는 음료수를 만들어 건낸다. 다시 제이에게 무엇인가를 주문하지 않는 한은 그 중년의 부인과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다. 일요일의 화창한 한낮은 무더웠고 주말가족들이 몰려들었으며 제이는 쉴 틈 없이 주문 받고, 포장하고, 음료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그 중년의 아주머니가 제이에게 다시 다가온다.
돈은 사람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나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 돈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수 있다면…
“여기! 팥빙수 팔아요?”
“네, 판매합니다.”
“근데 왜 난 몰랐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메뉴는 항상 당신이 서있는 그자리 바로 위에 있었다고요! 젠장!!!)
“팥빙수 하나 줘요! 세 사람이 먹어야 하니까 팥은 세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주고.”
“네, 알겠습니다.” (빙수 하나에 세 사람이 먹을 분량의 팥을 어떻게 달라는 것인가?)
“빙수 나왔습니다~~”
중년의 아주머니는 빙수를 받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제이에게 다가와 말한다.
“팥이 이게 뭐야! 세 사람이 먹는데 그만큼만 주면 어떻게! 더줘!”
“그러면 팥을 따로 더 드리겠습니다.”
제이는 머그잔에 팥을 듬뿍 담아 그 중년의 왕에게 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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