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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한 대가는?

dhandhan 2015. 3. 6. 22:54

일주일 전, 도서관을 찾았다. 저녁에 있을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섰고 도서관은 세미나 장소와 가깝기 때문에 항상 세미나가 있는 날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읽으려니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다. 일종의 아이디어 노트 같은 것이라, 그리고 비문이 많아서 읽을 때마다 쓸 데 없는 곳에 힘을 빼는 느낌이다.

 

가볍게 읽을 책으로 미야자와 겐지의 책 중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골라 들었다. 2의 인생을 여는 도시 사람들이 늙으막에 전원생활에 대해 동경하는 것,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기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에세이다. 일본의 문화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후 세대들의 놀이문화 협소로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젊어서 했던 등산이다. 이는 이성을 만나기 위한 좋은 장소였던 모양이다. 나이 들어 그런 설렘을 다시 찾으며 등산을 많이 하는데,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을 못하고 무리하다 보니 실족사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은 웃음이 절로 나게했다. 게다가 시골 생활은 도시랑 달라 각종 위험에 훨씬 노출되기 쉽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들을 줄줄이 늘어 놓는데, 아마도 본인의 경험이 많이 작용한 듯하다. 그러고 보면 뉴스에서 시골 노인들이 많이 사기 당하는 뉴스를 보게 되는 이유도 그러한 것 같다.

그런 글을 읽고 있었다.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시골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

 

그 때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대출증 가지고 계세요?

, 왜요?”

, 제가 부탁할게 있는데 잠시 밖으로 나와주실래요?”

나보다 앞서 나간 그는 재빨랐고, 잠시 그를 시야에서 놓쳤다. 열람실 유리문 밖에 서있는 그를 발견하고 따라나갔다.

, 제가 빌리고 싶은 책이 있는데, 서울 살지 않아서 대출이 안되요. 저 대신 책 좀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그를 빤히 바라보며 갈등했다.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지만, 나는 궁금했다. 믿을만한 사람일까.

그의 연락처를 받고 이름을 확인하고 그를 따라 열람실로 들어갔다. 그가 대출받기 위해 들고 온 책을 대출하려니 사서가 말한다. 대신 빌리는 건 원래 안됩니다. 본인이 책임지셔야 해요.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대출카드를 제시했다. 대출을 마치고 사서는 그를 따로 보자고 했다. 다시 열람실로 나와 사서와 그는 언쟁을 벌였다. 책의 대출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의 말투가 사서에게 공격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상황은 뭔가 불길했지만 나는 이미 책을 빌려주었다. 사서와 언쟁을 마친 그는 내게 고맙다고 거듭 인사하며 커피라도 한 잔 사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그를 보내고 열람실로 돌아가 다시 책을 읽었다.

시골은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의 경험(잠깐의 시골 생활)과 결부시키며 재차 확인했다. 어쩌면 사람을 믿고 살 수 없다는 도시가 사실은 그저 많은 사람들의 게으름의 산물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책을 빌려 준 그가 과연 책을 반납할까, 안 할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나는 선의를 베풀었고, 그러니 그가 반납을 해준다면 그 자체로 선의에 대한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믿음에 대한 대가는 믿음을 무너트리지 않는 것이지 커피 같은 보상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일주일 후 책은 반납되었고, 그는 나의 믿음에 정확한 대가를 지불했다. 아주 단순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신뢰관계의 기본을 이해하고 있지 않을 때가 많다.